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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시안에 대한 기록
An Essay About Milletian

목차

1. 서문
2. 밀레시안이란 누구인가
3. 시간의 흐름에 대한 의문점
4. 추가되는 의문들
5. 결론

1. 서문

이 기록은 그동안 내가 수집해온 자료, 특히 최근 에린에 다시 나타난 빛의 기사의 증언을 토대로 작성한 내용이다. 개인적인 관점에서 세운 가설을 정리한 책에 지나지 않지만, 혹시 이 기록을 읽게 될 사람이 있을 경우엔 정보를 전해주는 역할도 해줄 것이다. 언젠가는 이곳에 적힌 내용들을 검증하여 진정한 진실을 밝힐 수 있기를 기원한다.

2. 밀레시안이란 누구인가

최근 에린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다른 세계에서 온 자들이라고도 불리는 밀레시안이다. 밀레시안이란 이름은 별에서 온 자들이라는 뜻으로,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서 갑자기 나타난 그들을 지칭하기에 어울린다고 하겠다.

이들 밀레시안은, 본래 에린에서 살고 있던 우리들, 즉 다누의 후예들이라고 불리는 투아하 데 다난과는 여러 면에서 다른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투아하 데 다난 역시 처음부터 에린에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 한다. 따라서 갑자기 새로운 종족이 등장한다고 해서 크게 이상할 일은 없다. 그러나 밀레시안과의 차이는 이 둘이 확연히 다른 종족이라는 걸 보여준다.

밀레시안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빠른 성장속도와 환생이다.
대부분의 밀레시안은 아주 어린 나이에 에린에 등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들의 눈으로 보기에 놀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성장을 하며, 성인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어린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것을 밀레시안은 '환생'이라고 부르고 있다. 때로는 나이만 어려지는 것이 아니라 성별이 바뀌기도 한다. 이것은 영혼은 그대로 두고 새로운 육체를 입고 태어나는 일이라고 알려져 있다. 밀레시안들은 '나오'라는 존재가 이런 일을 해준다고 하는데, 나오에 대해서는 뒤쪽에 이야기하기로 하겠다.

밀레시안의 또 다른 특징은 죽음을 겪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과거 포워르와의 전쟁에서 얼마나 많은 투아하 데 다난이 죽어갔는가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들 중 대다수는 모험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에린에서 살고 있는 밀레시안 중 죽은 사람은 없다는 소문이 있다. 그들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은 죽음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왔던 다른 세계로 떠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위험한 모험가 생활을 하면서도 죽는 일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을 무모하면서도 강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3. 시간의 흐름에 대한 의문점

최근 나는 개인적 사정에 의해, 투아하 데 다난보다 밀레시안을 훨씬 많이 접하면서 살게 되었다. 처음에는 너무나 빠른 속도로 나이먹는 그들을 보면서 그것을 종족간의 차이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인 차이가 그들과 우리 사이에 있었다. 그것은 시간의 차이이다.

밀레시안인 빛의 기사의 증언에 따르면, 자신들이 최초로 에린에 도착한 그 시기에서 지금까지 수십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 - 즉, 투아하 데 다난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들이 나타난 것은 불과 몇 년도 되지 않은 최근의 일이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왜 우리가 몇 년으로 느끼는 일이 그들에게는 수십년 전의 일이 되는 것인가? 그들이 세는 날짜가 우리와 다르기 때문일까? 하지만 알아본 바, 그들의 달력은 우리의 것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차이는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때문에 나는 무언가가 잘못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4. 추가되는 의문들

이러한 이야기들을 수집하다보면 이상한 점들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그중 한 가지는, 밀레시안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나오를, 투아하 데 다난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밀레시안들은 종종 투아하 데 다난이 이미 몇 번이나 만났으면서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밀레시안에 따르면 나오는 그들을 이 땅으로 인도했으며, 그들이 에린에서 생활하는 것을 돕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나오는 본래는 에린의 인간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어떻게 해서 힘을 손에 넣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그 부분이 우리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이유라고 추측할 수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그녀는 이미 다른 세상의 존재이고, 그 때문에 그쪽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 밀레시안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다른 세계의 힘을 끌어내는 데 사용하는 영혼의 포션을 이용했을 때, 투아하 데 다난도 나오를 볼 수 있다는 점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투아하 데 다난이 종종 상대방을 잊는다는 것은 아무래도 석연치가 않다. 빛의 기사나 밀레시안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러한 현상은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을 뿐, 에린의 거의 모든 사람 - 투아하 데 다난에게 한정하여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단순한 건망증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위쪽에서 언급한 시간의 차이와, 여기에서 언급한 사라지는 기억이 만약 같은 원인을 가진 일이라면 어떨까.

왜 그러한 일이 일어났는가 하는 점은 알 수 없기 때문에 일단 제외하고, 기억과 시간에 관련된 이야기를 함께 묶어서 생각해보면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사실은 밀레시안들이 말하고 있는 대로 시간이 흘러갔으며, 우리들은 모두가 함께 겪고 있는 기억의 소실 때문에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이것은 매우 그럴듯하면서도 황당한 결론이다. 무엇보다, 그렇게나 시간이 지나갔다면, 우리가 나이를 거의 먹지 않은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사실 이것은, 어느쪽의 시선에서 보느냐의 차이일 수도 있다. 우리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들은 하루가 한달과도 같은 빠른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이며,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기억을 잃고 성장이 멈춰있는 것이 되어버린다.

문제는 어느쪽이 옳으냐이다.

한 순간의 공백도 없이 같은 시간대를 살아왔다고 한다면,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는 쪽의 말이 옳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아무리 믿기 힘들어도, 그들의 말이 사실일 가능성은 높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충격적인 결론이 된다. 지금으로선 그 결과에 대해 확신할 수 없더라도.

5. 결론

여태까지 고찰해본 여러가지 요소들을 따져볼때, 밀레시안은 어떤 면에서는 투아하 데 다난과 단순히 태생만이 다른 종족이라고 보긴 힘들다. 그들은 끊임없이 부활하고, 대단히 전투적이며, 계속해서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어떻게 보면 에린의 동물들과, 또 어떻게 보면 포워르와도 닮아있다. 하지만 우리와 같이 선을 행하려는 밀레시안과, 악의 대명사인 포워르가 비슷하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실례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으로선 우리들보다 그들이 더욱 강대한 종족이며, 포워르와의 전쟁에 있어서 그들의 손을 빌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이다.
투아하 데 다난과 밀레시안의 사이를 가르고 있는 시간의 차이에 대해 보다 제대로 파악하지 않으면, 그들과의 관계는 물론, 현재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는 여러가지 사태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된다. 이를 위해서는 보다 많은 사례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