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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땅, 티르 나 노이 The land of eternity, Tir Na Nog
목차
1. 서문
2. 티르 나 노이의 의미와 기원.
3. 티르 나 노이의 전래 방식.
4. 낙원의 본질에서 다시 출발하자.
5. 결론
1. 서문
이 세계는 자유와 평화, 그리고 사랑의 신이 이루는 세 개의 질서 속에 우리의 절대신 아튼 시미니가 세운 법칙으로 들어올려져 빚어졌으니 그 질서와 법칙의 아름다움은 인간의 얕은 지식과 좁은 경험으로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위대한 신이 만들어낸 에린의 질서는 이러한 모든 법칙을 초월하는 낙원의 창조를 통해 비로소 완성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이 책에서 설명할 티르 나 노이다.
라이미라크 교단의 경전에서 묘사하고 있는 티르 나 노이는 전설의 이상향. 오래 전부터 에린에 살던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져 내려오면서도 그 누구도 가 본 적이 없다는 신비의 세계.
이 책에서는 그러한 티르 나 노이의 진실을 바르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쓰여졌다. 이상향과 낙원을 찾는 이들에게 이 책이 혜안을 선사하는 좋은 도구가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2. 티르 나 노이의 의미와 기원.
티르 나 노이는 [젊음의 땅], 혹은 [영원의 세계]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이다. 이곳은 이름처럼 항상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곳으로 이곳에서는 그 누구도 늙거나 병들어 죽지 않는다고 한다. 죽어서 묻힌 사람들이 생전의 모습으로 다시 살아나 걸을 수 있게 되고, 살아있는 사람들은 아프거나 늙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곳은 노쇠와 죽음의 힘이 닿지 않는 곳. 그리고 인간의 눈물과 분노가 의미를 잃는 곳.
티르 나 노이는 또한 신들의 세계로서의 묘사되는 경우도 많은데, 투아하 데 다난의 위대한 영웅들이 죽어서 신이 된 뒤 티르 나 노이로 가서 다시 생명을 얻어 인간의 세계를 굽어보고, 때로는 다시 얻은 생명으로 에린에 강림하기도 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이 말이 최초로 등장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지 분명하지 않은데, 이는 티르 나 노이에 대한 내용이 기록이 아닌 구전을 통해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가장 오래된 기록 중에서는 태초의 민족 중 하나라고 일컬어지는 반 족이 남긴 기록에서 그 편린을 엿볼 수 있지만, 그 묘사가 모호해 최초의 기록으로 인정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티르 나 노이에 대한 묘사는 크게 다음과 같은 범위 정도로 한정되어 있는데, 이곳의 나무에서는 보석이 열리고, 들에는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고 온 천지에는 좋은 향기가 가득하다. 바닥이 보이는 투명하고 맑은 개울물이 흘러흘러 큰 강을 이루고, 들짐승과 날짐승들이 서로 어울려 평화의 노래를 부른다. 땅은 더없이 비옥해 뿌리지 않아도 거둘 수 있으며 이곳에서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은 신들의 축복과 은혜를 사랑의 이름으로 이야기한다.
여기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이 세계에 대한 묘사가 구전을 통해 전해져 온 것이 확실함에도 이 세계에 대한 묘사가 각 지방과 민족별로 거의 일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3. 티르 나 노이의 전래 방식.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티르 나 노이라는 세계는 의외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와 가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그곳으로 자유롭게 왕래가 가능하지만, 그곳에 갔다 온 사람들은 어떤 일에서인지 그 장소로 가는 방법에 대해 함구하고 직접적으로 그곳의 광경을 묘사하는 것을 꺼리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간접적인 티르 나 노이에 대한 묘사는 계속 남아서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지만 역시 티르 나 노이에 실제로 갔다온 자들의 경험이 그러한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이야기가 덧붙여지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태까지 발표된 많은 모험가들의 기록을 고려해볼때 실제로 이러한 일이 가능할 리가 없다는 것은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다.
또 하나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티르 나 노이는 철저한 상상 속의 산물로 이곳에 갈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에 맨 처음에 티르 나 노이를 상상한 사람의 이야기에서 더 이상의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는 점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티르 나 노이에 대한 믿음이 너무도 굳건하고, 그에 비해 다른 사람들의 낙원 이야기에 대한 참여와 강화가 적다는 점이 역시 걸린다.
이러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낙원에 대한 어떤 공통적인 원형이 에린에 살고 있는 인간들에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이조차도 아직 본격적으로 논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낙원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과연 어떤 식으로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어떤 식으로 공감을 얻어 그 내용이 전해지는 것인가를 살펴보는 것이 티르 나 노이의 실재를 둘러싼 의구심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4. 낙원의 본질에서 다시 출발하자.
앞서 낙원에 대한 원형을 에린의 거주민들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 낙원에 대한 이야기가 과연 어느 정도로 현실성이 있는 이야기인지 검증해보는 것이 티르 나 노이의 낙원으로서의 가치를 확정짓는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모든 이들의 마음 속에 있는 낙원의 존재는 과연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과연 모든 이들이 꿈꾸는 낙원이 존재할 수 있을까?
낙원의 삶에서는 절대로 타인이 묘사되지 않는다. 오로지 개인, 혹은 그와 밀접한 사람의 삶만이 묘사된다. 더욱이, 한 사람의 낙원은 다른 사람에게는 지옥을 의미할 수 있는 것임을 안다면 솔직히 낙원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선뜻 받아들이기는 힘든 것이다. 낙원에서 만족시켜야 할 가치는 젊음이나 질병이 없는 세계가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가치의 조절에 대한 문제이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묻노니, 낙원이 젊음이나 질병이 걸리지 않는 것과는 무관하고 오로지 자신의 가치와 욕망을 조절해야 하는 곳이라고 한다면, 낙원이 그런 모습이라면, 당신은 그 곳에서 영원한 삶을 살고 싶은가?
정작 티르 나 노이에 대한 이야기가 세상에 널리 퍼질 때는 이 세계에 환란과 파괴의 힘이 드리워질 때였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세상이 어려울 때 이상향에 대한 갈망과 희구가 강해진다는 점을 생각해 보라. 즉, 티르 나 노이에 대한 이야기는 사람들의 낙원에 대한 작은 소망일 뿐, 그것이 실재하는지의 여부와는 무관하다.
확실한 것은 이곳에 다녀왔다는 사람들이 어떠한 실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고, 그곳으로 가는 방법이나 가는 길이 어디인지에 대한 질문에 답변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티르 나 노이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낙원일 뿐, 실제로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5. 결론
만족할 만한 설명은 아닐지언정, 현재로서 티르 나 노이가 존재한다는 증거는 없다. 물론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어렵다.
이 두 가지의 어려움의 간극에 티르 나 노이가 존재한다. 낙원의 이름으로. 그런 까닭에 현실적인 모험가들에게는 낙원의 꿈 대신 차라리 다른 일을 하도록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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