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머리말
2. 검은 옷의 여인
3. 죽음의 소리
4. 신체 이동
5.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1. 머리말

인간에게 영원한 휴식이란 죽음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위험한 발상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 현실의 삶이 그만큼 고통스러울 수 있음을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끝없이 죽음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삶이 때로는 죽음 이상으로 힘들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음에도 인간에게 죽음은 언제나 두려움의 대상일수 밖에 없다.

한편 우리는 임사체험이라는 경험을 통해 죽음이라는 낯선 세계를 지나왔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 임사체험이란 죽음 직전에 이르렀던 사람이 극적으로 살아난 후에 이에 관해 진술하는 체험을 말한다. 그 체험담은 비록 사람들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크게는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임사체험의 해석을 둘러싸고 오래도록 여러 논쟁이 있었다. 우선 신비주의적인 입장에서 임사체험은 사후 세계의 일부를 직접 경험한 결과물이라는 주장이다. 반면 임사체험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극도로 쇠약해진 뇌 안에서 발생한 특이한 환각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임사체험 현상에 관한 이야기를 접해본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임사체험에 관한 사례 조사를 통해 그것이 몇 가지 유형으로 정리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2. 검은 옷의 여인

임사체험 당시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옷의 여인을 목격했다는 사례가 있다. 이 검은 옷 여인에 관해서는 저승사자라는 이야기부터 시작해 검은 날개의 모리안 여신이라는 이야기까지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다.

켈라 베이스캠프의 I씨(개인상점운영, 32세, 남자)는 카루 숲에서 나무장작을 채집하던 중 검은 반달곰의 공격을 받고 임사체험을 하게 되었다.


"온몸이 으깨지는 듯한 충격을 받고 순간 정신을 잃었습니다. 잠시 후 뜨거운 불덩이가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느낌을 받고 깨어나게 되었죠. 늑골 근처에 허전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갈빗대가 몇 개 나갔거니 싶었지요. 전에도 나무에서 떨어져 늑골을 다쳐본 적이 있기 때문에 그 느낌이 어떤 지 기억하고 있거든요.

어서 동료를 찾아야겠구나 싶은 생각에 몸을 일으켰는데 의외로 쉽게 몸이 말을 듣더라고요.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어 아래를 내려다봤는데 발밑에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사람이 하나 누워있었어요. 한참이 지나서야 그게 저라는 걸 알아볼 수 있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참 무서운 일이었는데 그때 당시로는 아무런 감정의 동요조차 일어나지 않았어요. 차분하게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기분이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눈 앞에 낯선 여인이 서 있는 걸 보게 되었습니다. 얼굴은 잘 떠오르지 않지만 검은 옷을 입었었고 커다란 무언가가 출렁거렸다는 기억뿐이네요. 이게 말로만 듣던 저승사자구나 싶은 생각에 갑자기 겁이 났습니다. 그리고 눈앞이 깜깜해지며 다시 정신을 잃고 말았어요."


3. 죽음의 소리

임사체험에 관한 몇 단계의 과정 중에 소리가 들어간다는 사실은 특이한 부분이다. 이 소리의 내용은 바람소리, 어릴 적 자주 들었던 바드의 노래, 작은 종이 울리는 소리 등등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이것은 임사체험이 단순히 시각적인 영역으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감각 경로를 통해 반응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다음은 메이즈 평원에서 만난 K씨(요리사, 25세, 여)가 어린 시절에 겪었던 일이다.

"10살 무렵의 일이었습니다. 저는 당시 유난히 이야기를 좋아하는 소녀였지요. 특별히 모험 이야기를 좋아해서 모험가들이 모이는 캠프파이어의 밤이면, 무리에 섞여 밤새 이야기에 귀 기울이곤 했답니다. 물론 캠프 셰어링으로 음식을 나눠먹기도 했어요.

사건이 있던 그날도 캠프 셰어링이 있었습니다. 마침 메뉴가 '찐옥수수'였는데 당시 저는 처음 보는 음식이었습니다. 제가 너무 어렸기 때문에 위험할 수도 있다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욕심을 내어 한입 맛을 보았어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심장마비였습니다. 때마침 근처에 심폐소생술을 할 줄 아는 힐러가 있어 목숨은 구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되었어요.

어디선가 아름다운 만돌린 연주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소리 나는 방향으로 걸어갔는데 그 너머에는 오렌지 빛 광선이 분수처럼 뿜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빛 너머에서 누군가의 그림자가 비쳐 보였습니다. 하지만 눈이 부셔 얼굴은 보이지 않았어요. 저는 빛의 분수를 지나 좀 더 가까이 가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연주가 그치며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너는 아직 여기 올 곳이 아니니 이만 돌아가라는 음성이었어요. 저는 갑자기 서러운 기분이 들어 한참을 울었습니다. "
4. 신체 이동

죽었다가 살아났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살던 마을 광장이었다던지 혹은 던전 깊숙한 곳에서 죽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던전 로비였다는 등의 체험담이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문게이트나 마나터널을 지날 때와 같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고 이야기한다.

티르 코네일에 살고 있는 K씨(약초학자, 48세, 남자)는 15년 전 약초 채집을 위해 키아 던전에 갔다가 고블린들의 공격을 받고 임사체험에 빠진 경험이 있다.


"원래 약초 채집을 위해 던전에 갈 때는 절대 혼자 가는 일이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던전이란 게 언제 어디서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곳이기 때문에 동료와 파티를 맺길 마련이죠.

하지만 약초 채집을 하다 보면 시야가 좁아진다고나 할까요? 약초 채집에 몰두해 있다가 그만 일행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혼자 길을 잃고 헤매다가 설상가상으로 고블린까지 만났구요. 만일을 대비해 단검 정도의 가벼운 호신구는 늘 가지고 다니지만 저 혼자서 고블린들을 상대할 자신은 없었죠. 거리를 두고 조금씩 뒷걸음치다가 정신없이 줄행랑을 쳤습죠. 놈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듯싶어 안심했는데, 갑자기 어깨가 저릿하더니 숨조차 쉬기 어려웠어요. 날카로운 쇠꼬챙이로 후벼 파는 통증이 등줄기를 타고 몸 전체로 퍼지더군요.

고블린 아처였습니다. 연속해서 화살이 날아왔고 피할 틈도 없이 그 자리에서 꼬꾸라졌어요. 정신은 점점 희미해지는 듯싶다가 어느 순간부터 다시 또렷해졌습니다.

묘하게도 제 몸 위에 거미줄 같은 실이 연결되어 있는 게 보였습니다. 실들이 용수철마냥 늘어났다 줄어들기를 반복하는 것이었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휙 하니 작은 틈새 안으로 사라졌습니다. 그 순간 제 몸뚱어리도 같이 빨려들어갔지요. 정신이 들고 보니 던전 로비였습니다."


5.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임사체험에 관한 여러 사례들을 살펴봤지만 그 실체에 다가가려 할 수록 죽음의 문제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뒷걸음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삶에 관한 유일한 진실은 그것이 언젠가는 끝나버리게 될 거라는 사실이다. 삶 다음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어쩌면 빛과 그림자처럼 서로 닿아있는지도 모른다.
임사체험이라는 죽음에 대한 간접 경험을 통해 우리는 의외로 죽음이 가까운 곳에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본 저서를 통해 일반인들의 죽음에 대한 인식의 폭이 넓혀졌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