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의 길을 걷는 많은 이들에게

작곡 스킬이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음을 더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고, 만들 수 있는 곡의 호흡도 길어진다. 마음 속에 담겨진 악상을 더욱 풍부한 음색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것은 곡을 만드는 모든 이들에게 축복과도 같은 일이다.

하지만 작곡에만 신경을 쓴 나머지 음악을 이해하는 시각을 향상시키지 못하면 결국 형식적인 면에서는 완벽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되어버리고 만다.

이 책은 작곡을 통해 이 세계의 아름다움을 하나 더 만들고자 하는 이들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쓴 책으로 에린의 음악을 구성하는 세 가지 스킬인 음악적인 지식, 악기연주 스킬, 그리고 작곡 스킬이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해설하는 책이다.

부디 이 책이 읽는 사람들에게 음악을 균형있게 이해하고 음악의 세계를 보다 깊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한다.

작곡 스킬

작곡 스킬은 곡을 만드는 스킬이다. 악상을 악보 스크롤에 정리해서 다른 사람들이 보고 그것을 연주할 수 있게 하는 이 스킬은 사람들의 입과 노래를 통해 전달되는 음악을 특정한 형태로 정형화해서 거리과 세월의 벽을 넘어 전달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편리한 스킬로 인정받고 있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최종적인 목표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작곡 스킬의 매력은 온 에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다보니 처음부터 이 작곡에만 전력을 다해 집중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하지만 스킬이 향상되면 향상될수록 본디의 의미와는 달리, 악상을 악보에 정리하는 과정 자체를 보다 더 중시하는 스킬이 되어버렸다. 악보를 더 보기 좋게 쓸 수 있고, 다양하고 화려하게 적을 수 있으며, 더 긴 음악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일까? 작곡에 묻혀서 정작 세상에 떠도는 음악을 채록하는 데에만 급급할 뿐 보다 중요한 어떤 것을 우리는 잃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 음악은 본디 표현의 수단. 작곡 스킬의 지엽적인 면을 장점으로 강조하면서 우리는 오히려 음악을 음악답게 이해하지 못하고 형식과 기교의 조합을 음악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는 풍조가 생겼다. 그렇다면 이러한 풍조는 어떤 방법을 통해 치유될 수 있을까?

악기연주

치유를 위해서는 먼저 작곡을 하는 사람들도 악기연주에 대해 신경을 쓸 것을 권한다.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음유시인은 물론이고 악기연주가에게도 중요하다. 악기의 특성을 이해하고, 악기의 주법을 연구하고, 그 주법의 묘미에 매혹되며 곡을 만드는 사람은 악기의 매력을 더욱 잘 살릴 수 있는 곡을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작곡한 곡을 스스로 연주조차 해보지 않은 채, 어떤 부분에서 소리가 어떻게 나는지 검증조차 해보지 않은 채, 막연한 음악이론에 기대어 안일한 악보를 써대는 작곡가의 음악에 아름다움이 자리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진정한 작곡은 작곡 스킬을 연마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높은 수준의 연주를 통한 성취를 통해서도 이루어진다. 자신이 애초에 표현하고자 했던 악상을 자신의 악기로 완벽하게 연주해냈을 때의 기쁨과 그 기쁨을 다른 이들에게 표현하고, 자신의 곡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악기로 자신의 곡을 연주하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 작곡가로서 보람을 느끼는 첫 발자국인 것이다.

음악적 지식의 함양

음악적 지식은 음악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고, 소리와 음악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 제반 지식을 의미한다. 음악적 지식은 자신보다 선배 음악가들이 자신의 시대 이전에 어떤 부분에서 고민을 하고, 어떻게 해결책을 찾아갔는지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막다른 작곡의 길에서 마주하는 음악적 지식은 음악의 길에 정진하는 작곡가들에게 그래서 더욱 반가운 것이다. 음악적 지식은 작곡가에게 음악이 전달하는 의미에 호소력을 더하고, 아울러 앞으로 음악이 향해야 하는 길과 작곡가로서의 미래를 고민할 수 있는 바탕을 제공하는 분야다.

작곡과 악기 연주가 소리를 이용해서 표현할 수 있는 한계에 도전하는 분야라고 한다면, 음악적 지식은 소리를 이용해서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은 어디까지 도달할 것인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는 분야라 하겠다.

음악의 마법적인 효과

이 세 가지 분야 모두에서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은 음악과 이 세계의 구성 원리를 함께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게 되고, 이것은 음악에 애초에 의도하지 않았던 마법적인 효과를 더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을 세칭, 마법 음악이라고 한다.

드루이드 출신의 음악가 엔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하는 음악의 마법적인 효과는 보통 음악적 지식이 9랭크 정도에 이른 사람이 쓰는 악보에서 마법적인 효과가 조금씩 나타나는 멜로디가 기록된다고 한다. 일단 음악과 마법적인 효과의 접점에 대해 깨우친 작곡가가 쓰는 악보에는 그의 작곡 스킬의 수준이 높을수록 강력하고 다양한 효과가 깃들게 되며, 악기연주 스킬이 뛰어날수록 악보에 들어있는 마법적인 효과를 더욱 강력하게 나타낼 수 있다고 전해지는 것이다.

엔에 대해 연구한 학자들은 엔이 사용하거나 작곡한 음악을 크게 세 범주로 나누었다.

*상태의 증가
음악을 통해 연주자 및 파티의 상태 중 일부를 향상시키는 것. 힘이나 방어, 운, 보호, 솜씨, 지력 등이 보고되어 있다.

*회복
음악을 통해 연주자 및 파티의 생명력, 스태미나, 마나 중 하나를 회복시키는 것.

*기타
음악을 통해 궁수의 감각을 향상시킨다 음악의 박자로 시전을 주도해 마법 시전에 드는 시간을 단축시킨다. 음악을 통해 들짐승이나 몬스터를 진정시킨다 음악을 통해 아군에게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힘을 선사한다.

음악을 마법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죄악시하는 교조주의적 입장의 음악가들의 반발 탓에 이에 대한 연구는 그다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 않은 것이 실상이긴 하지만, 음악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것이 원래의 목표라고 한다면 음악의 마법적인 효과를 굳이 부정하거나 죄악시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정한 경지에 오른 음악가들이 마법적인 효과를 가진 음악을 긍정할 것인가, 부정할 것인가. 그 판단은 이 책을 읽는 사람에게 맡긴다.

마지막 당부의 말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작곡을 위해서는 작곡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여기에 악기연주를 통해 악기에 대해 온전히 이해를 다지는 일과, 선율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람들의 영혼을 움직이는 일에 대해, 그리고 선배 음악가들은 어떤 고민을 했는가를 파악하는 일에 대해서도 끊임없는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통해 작곡의 길에서 자신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된 음악가들은 신이 허락한 마법적인 능력을 악보에 부여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을 사용할지, 사용하지 않을지는 온전히 그 음악가의 판단에 달린 문제.

하지만, 이 점은 반드시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마법적인 효과를 위해서 음악을 공부한다면, 그 사람은 아주 불행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마법을 배우는 것이 낫지, 음악은 그에게 어떠한 의미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마법 음악과 형식주의 음악 어느 쪽에도 경도되지 않으려 하지만, 적어도 음악이 수단으로서 전락하는 것에 대해서는 호의적인 입장을 취할 수가 없다. 그것은 음악의 길을 걷는 사람에게는 눈도 돌리지 말아야 할 죄악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좋은 곡을 쓰기 위한 갈망과 노력에서 출발하는 것. 위대한 작곡가가 되기 위해서는 단지 곡을 쓰는 것 뿐만이 아니라 악기연주 및 음악적 지식과 같은 제반 음악적인 역량을 함께 키워야 위대한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만약 작곡의 길에서 어떤 상실감을 느꼈다면, 그리고 음악적인 지식의 학습을 미뤄놓은 채 작곡에 대해서만 공부를 해왔다면,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다.

음악적 지식과 악기연주에 대해서도 작곡에 못지 않은 관심과 열정을 들일 것을 권한다. 그 여정은 쉽지 않고 힘겨워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결국 그것은 당신을 위대한 음악의 정도로 인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