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내가 한 늙은 모험가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누군가는 이것을 들으며 죽을 때가 다 된 노인의 허풍이라고 하였고, 누군가는 이것을 들으며 기회를 놓친 환상 속의 모험이라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가 뭐 그리 중요하랴. 이야기꾼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 이렇게 재미있고 신비한 경험을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게 하는 것뿐이다.

그때 나는 스무 살 정도 밖에 되지 않은 애송이였지.
때문에 어딘가로 떠나는 모험이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어.
솔직히 이 울라 대륙 내에서는 안 가본 곳이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돌아다녔다고 해도 좋아.
저 울레이드 숲의 깊은 곳에서 곰과도 싸워봤고, 센 호수의 외딴 섬에서 물의 요정과 만나보기도 했어.
하지만 그렇게 몇 년을 지내고 나니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드는 거야.
나에겐 보다 자극적인 무언가가 필요해! 그런 느낌 말이지.

그때였어. 동료들이, 새로운 대륙으로 건너가보지 않겠냐고 말한 것이.
나야 거절할 이유가 없었지. 새로운 모험!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잖아.
설마하니 그게 동료들과의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하고 말이야.

아마 그때 유난히 우리가 재수가 없었을 지도 몰라. 비싼 뱃삯을 낼 수 없어서 좀 싸구려 화물선을 빌리긴 했지만, 항해사도 능숙한 사람이었고, 선장도 바다에서 몇 십 년 동안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었거든.
술이 과한 사람들이었다는 것만 빼면 정말 모든 것이 완벽했다고.

우리가 탄 배를 덮친 풍랑이 얼마나 심했는지는 말하지 않겠어. 다만, 우리 일행 중 살아난 것은 나 뿐이었어. 눈을 떠보니 웬 모래사장에 코를 박고 굴러다니고 있더군. 내 옆에는 그 흔하디 흔한 난파된 흔적 조차 없었어. 내가 꼭 껴안고 있던 나무 조각하고 폭삭 젖은 내 배낭만 빼면 말이야.

보통은 거기에서 낙담을 하고 다시는 모험에 나설 수 없게 되겠지.
하지만 아니었어. 내 말을 잘 들어봐.
그곳은 진짜 신천지였던 거야. 모래사장에서 눈을 뜬 그 순간부터, 나는 내게 닥친 불행을 생각할 틈 조차 없었어.

본 적 있어? 마치 부채처럼 넓적하고 커다란 잎을 가진 기둥 같은 나무를? 그건 무슨 옥수수 껍질을 보는 것 같이 생긴 나무들이었다고. 게다가 저 멀리 보이는 울창한 산! 그건 울라 대륙에서 봤던 것처럼 깎아지른 듯한 예리한 산들이 아니었어. 머리 손질을 제대로 안한 마누라 머리카락을 보는 듯, 무언가 부글부글 얽히고 설켜있는... 그래, 그림책에나 나오는 정글이라는 그런 느낌이었다고!

나는 허둥지둥 마을을 찾아 다녔어. 누군가 사람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거든. 그리고 다행 히도, 곧 마을을 찾을 수 있었어. 하지만 그건 내가 상상하던 마을과는 완전히 다른 것 이었어.

우리랑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에, 어찌저찌 하니까 말도 일단 통하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의 생활은 내가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어. 온통 흙으로 만들어진 벽에다가, 나뭇잎으로 꾸민 창문에,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주렁주렁 과일이나 열매로 치장을 한...

정말, 말로는 설명하기가 쉽지않아.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것은, 그들이 내게 매우 호의적으로 대해줬다는 거야. 그리고 그들이 내게 해준 말은, 다행히도 나와 같은 차림새를 한 사람들이 드문 드문 그곳을 방문하고 있다는 거였어.

그들은 내가 풍랑을 만나서 모든 것을 잃었다는 것도 쉽게 이해를 해 주었어. 그리고 시간이 좀 오래 걸리긴 하겠지만, 고향 사람을 만나서 돌아가도록 배려도 해주겠다고 했어.

하지만 내가 미쳤어? 난 모험자라구! 아무리 동료들을 잃었다고 해도,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지. 그랬다간 오히려 죽은 동료들을 배신하는 게 되는 셈이잖아? 그들의 목숨을 헛되이 할 순 없었지. 그래서 나는 그 마을에 머무르는 대신, 그 대륙을 모험하기로 결심했어.

그로부터 몇 달이었을까, 아니면 몇 년이었을까. 나는 그들의 마을을 근거지로 삼아 계속해서 모험을 다녔어. 어떨 때는 며칠 만에 돌아오기도 하고, 어떨 때는 몇 주나 계속 돌아다니기도 했지. 고향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풍경들에 나는 눈이 돌아버릴 것 같았어.

사막에, 정글에, 이상하게 생긴 산에, 동굴에...
그런 것들도 희한했지만, 그곳에 사는 생물들도 희한하긴 마찬가지였어.
생전 보지 못한 초식 동물에, 가축에, 맹수에....

제일 희한한 것 중 하나는 뭐였는지 알아?
그곳엔 마족이 없었다는 거야.
아, 물론 마족과 비슷한 몬스터들은 득시글거렸어. 게다가 가끔 사막에서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는 던전 안에는 그런 몬스터들이 가득했지.

다만, 사람들이 마족의 존재를 모르더라고. 울라 대륙에서는 그렇게나 서로가 피 터지게 증오하면서 싸워댔는데, 이 사람들은 그런 게 있는지도 모르더라는 거야. 그리고는 나더러 뭐라는 줄 알아? 다른 종족은 따로 따로 떨어져 사는 존재이긴 해도, 서로 미워할 종족은 아니라더라구! 내 참 기가 막혀서!

그래서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 물어봤지. 그랬더니, 세상에 아튼 시미니도 놀라 자빠질 일이지! 자기네 대륙에는 인간도 아니고 마족도 아닌 또 다른 종족이 살고 있다는 거야!

그들은 무척이나 경계심이 높아서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간혹 가다가 인간 모험자들과 만나서 교류를 할 때도 있다는구만? 그런 종족 중에는, 인간보다 호리호리한 데다가 귀가 뾰족하고 예쁘장한 종족도 있고, 마치 집채만한 크기를 가진 거인 종족도 있다는 거야.

혹시 정령이나 오거를 잘못 본 게 아니냐고? 이 보게, 내가 그걸 안 물어봤겠나! 당연히 제일 먼저 그걸 물어봤지. 그런데 한사코 아니라는 거야. 자기네들도 정령이나 오거를 알지만, 종족은 종족이고 정령은 정령이라나?

결국 믿을 수 없었던 나는 직접 확인해보기로 했어. 그 다른 종족들을 찾아 나선 거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이야기는 거기까지밖에 들을 수 없었다. 늙은 몸에 지나치게 흥분한 나머지 발작을 일으켜 쓰러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황급히 그를 간호하는 가족들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달려들자 우리는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늙은 모험가는 물러나려는 내 소매를 붙잡고 말했다.


절대 이 이야기를 전해줘. 내 모험은 거기에서 끝날 예정이 아니었어.
그 사막에서 조난만 당하지 않았더라면... 거기에서 본국의 행상단을 다시 만나지만 않았더라면... 거기에서 잠깐의 잘못된 생각으로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지만 않았더라면...

아아 이리아! 내가 다시 그 대륙으로 갈 수만 있다면, 나는 어떤 대가라도 치를 수 있을 텐데. 그러니까 꼭 전해주게, 다른 사람들에게. 누구라도 좋으니까, 나를 다시 한 번만 그곳에 데려가 달라고. 아니, 그 대륙이 허상이 아니라 실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해 달라고.

거기까지 말한 그는 가족들의 부축을 받고 결국 몸져 누울 수 밖에 없었다. 나와 함께 이야기를 들었던 동료들은, 그것을 결국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만약 누군가 그렇게 새로운 대륙으로 오가는 자가 있었다면 여태까지 소문이 퍼지지 않았을 리 없다면서.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여태까지 어떤 연유에 의해서건,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대륙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다만 그곳을 방문했던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비밀로 그 이야기를 지켜왔다면, 그리고 그곳의 새로운 재화와 보물을 독점해 왔다면.

물론 이것은 나의 상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구체적인 전설을 또 어디에서 들을 수 있겠는가. 비록 나는 직접 내 발로 뛰진 못했지만, 이렇게 그 이야 기를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여. 그들이 만약 모험가라면, 불 쌍한 늙은 모험가를 위해 이리아라는 그 대륙을 다시 한 번 찾아줄 생각은 없는가?

그대들 중 단 한 사람이라도 그의 뒤를 잇는 자가 나온다면, 이야기꾼으로써의 나의 인생은 충분히 행복한 것이 되리라 생각한다. 부디 꿈 많고 용기 있는 모험가의 손에 이 책이 들어가길 기원하며, 이만 펜을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