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린 세계의 동쪽으로 배를 타고 여섯 달을 가면 베르시아라는 대륙이 나온다. 베르시아의 서부에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 살고 있으며, 동부에는 오크와 다크엘프들이 살고 있다. 서부에는 히로니덴이라는 나라가, 동부는 국가의 형태를 이루지 못한 수십 개의 부족들이 있다. 이 인간과 마족은 수천 년에 걸친 전쟁을 겪어오며, 그 기록을 검은 마법 상자에 남겨놓았다.

내가 베르시아 대륙을 방문하였을 때, 수십 년 전 발견되었다는 그 검은 상자를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검은 상자를 들여다 보려면 커다란 수정 구슬, 정확하게는 상자에 들어있는 나팔 모양의 수정체가 필요하다. 그걸 부르는 이름이 있었던 것 같았는데... 어쨌든 수 천 명의 군대가 서로 부딪치고 하늘엔 커다란 독수리와 용들이 엉켜 싸웠다. 메테오가 떨어지고 번개가 땅을 가르는 모습도 보였다. 나는 너무나 무서워 눈을 감아버렸다.

재밌는 것은, 그 상자를 발견한 베르시아 대륙 작은 나라의 주 수입원이 그 상자를 이용한 관광 수입이라는 것이다. 집에서도 그 상자를 볼 수 있게 크기를 작게 만들어 팔 계획도 있다고 한다. 조상들이 흘린 피가 지금에 와서는 유희거리가 되다니 참 우스운 일이다.

2004년 9월 이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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