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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흐네 잉어와 작은 에린
Brifne Carp and Small Erine


오늘도 아델리아 천 하류에서 서식하는 한 마리의 커다란 브리흐네 잉어는 생각했습니다.

"어째서 아델리아 천은 아름다운 거지? 무엇 때문에 인간들은 아름답다고 하는 걸까?"

브리흐네 잉어가 알을 깨고 나와 지금까지 함께 해 온 아델리아 천.
브리흐네 잉어는 그를 존경하면서도 은근히 질투했습니다.
그냥 마을의 한 줄기 물 덩어리일 뿐인 이 아델리아 천의 모든 면이 자신보다 훨씬 훌륭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브리흐네 잉어는 자신이 몸을 담은 이 아델리아 천을 이젠 증오합니다. 언제나 노력해도 그의 뒷 꽁무니만 쫓아갈 뿐. 아델리아 천이 항상 그의 존재를 밟아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붉은 빛의 이웨카가 뜬 어느 날 밤.

브리흐네 잉어는 고민 끝에 아델리아 천을 나왔습니다. 그에게 있어선 첫 가출이었습니다.
아델리아 천을 나와 초록빛 잡초 한 포기를 밟고 있는 그의 몸은 물고기의 모습이 아니라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웨카의 빛을 받아 뽀얀 우유빛 피부와 진한 청색의 머릿결이 더욱 돋보이는 소년이었습니다.

"삼일 후에 돌아올게."

소년은 아델리아 천의 수면 위에 떠오른 작은 친구들에게 말했습니다.
인간으로 변할 수 있는 건 오래 산 동물들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었지만, 너무 오래 인간의 모습으론 지낼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삶에 휩쓸려 자신의 본 모습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는 먼저 인간들이 많이 몰려있는 광장으로 걸어갔습니다. 그곳의 커다란 느티나무 밑엔 몇몇의 사람들이 땔감에 불을 지피며 밤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그들 중에서 류트를 연주하는 한 청년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아델리아 천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나요?"

그는 갑작스런 엉뚱한 질문에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당연한 거 아닌가요? 아델리아 천은 무지 깨끗해서 식수로도 쓴다고 하는데요... 그것보다 전 그 천을 보며 작곡을 해요. 노래의 소재로 아주 많이 사용하고 있어요."

그는 잘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곧 자신의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소년은 그것이 왠지 마음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옳은 말이었다 해도, 자신이 원하는 대답은 아니었습니다.
소년은 정처 없이 티르 코네일을 떠돌아 다녔습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났습니다.

소년은 또 다른 인간을 만났습니다.
그는 건장한 중년의 기사였습니다. 온몸에는 철갑을 두르고 있었고 오른쪽 허리엔 날이 잘 드는 듯한 긴 검을 차고 있었습니다.
그는 여관의 카운터에서 술을 잔뜩 마시고 헤롱 거리고 있었습니다.

"뭐, 아델리아 천? 아아~ 그거 무지 멋지지! 어렸을 때 친구들이랑 거기서 얼마나 신나게 놀았는데! 주변에 풀 내음도 그윽하고... 자네도 검을 쓰는 자라면 나중에 한번 가보는 게 좋아. 수련하기에 꽤 좋은 장소지."

이것도 아닌 것 같아.
소년은 속으로 말했습니다. 아직 뭔가가, 아주 중요한 뭔가가 빠진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알아내기엔 너무 시간이 촉박한 듯 싶었습니다.

마지막 날입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아델리아 천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아델리아 천에 발을 담그기 전, 건너편에 낚시를 하고 있는 한 어린 소녀가 보였습니다. 새하얀 머릿결이 유난히 빛나는 소녀였습니다.
소년은 그 소녀에게 소리쳤습니다.

"저기, 혹시 당신은 아델리아 천이 아름답다고 생각하세요!?"

멀리서 소녀가 희미하게 웃어 보였습니다. 그녀는 물속에 담가 두었던 낚싯줄을 꺼내 놓고 대답했습니다.

"당연하죠! 아델리아 천은 작은 에린인걸요!"
"작은 에린?"

그녀는 말을 이었습니다.

"전 이 아델리아 천이 작은 에린이라고 생각해요. 아델리아 천은 아름다워요.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아델리아 천 혼자서는 절대 만들어 낼 수 없지요. 지금 이 아델리아 천을 보세요. 뭐가 보이나요?"
"브리흐네 잉어들과 은붕어 몇 마리, 사방에 깔려있는 돌이요."

소녀의 눈이 반짝이는 듯 했습니다. 산들바람에 그녀의 새하얀 머리가 아델리아 천의 리듬에 맞춰 일렁였습니다. 다시 입을 열어 말했습니다.

"그래요. 아델리아 천의 아름다움은 모두가 만드는 거에요. 저 하늘에서 빛을 선사해 주는 팔라라, 색색의 조약돌, 그리고 팔라라에게 받은 빛을 비늘에 담아 아델리아 천에게 전해 주는 은붕어와 브리흐네 잉어..."

소년은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토록 원하고 찾아왔던 말을 소녀가 시원스레 꺼내어 주는 듯 하였습니다. 그녀의 말을 조금 더 듣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습니다. 벌써 저 산 너머엔 어둠이 기어오고 있었습니다.

"고마워요. 당신 덕분에 이제 그를 증오하는 게 아니라 사랑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정말 고마워요."

진한 청색 머리의 소년은 아델리아 천에 발을 담갔습니다. 푸른 연기가 피어 오르더니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한 마리의 커다란 브리흐네 잉어만이 아델리아 천에서 힘차게 헤엄 치고 있었습니다.

"에린도 혼자서는 아름다워질 수 없어요. 인간들과 동물들... 모두가 빛내주고 있는 걸요. 그러기에 난, 아델리아 천을 작은 에린이라 불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