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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만든 치즈빵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Very Special Cheese Bread of Hers


에린엔..

에린엔...

축복을 받은 이 곳, 에린엔 셀 수 없을 만큼에 많은 직업이 존재한다. 토끼나 늑대 같은 동물을 사냥하는 사냥꾼, 하루 종일 또 달리는 알바생부터- 이 곳 에린을 지키는 기사단까지, 모두가 에린에게서 소중한 존재다. 그리고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단 한 명.

이 말을 하면 [전혀]라고 대답해 버릴,
겉모습은 여느 전사와 같은, 그런 전사가 에린에 살고 있다.

올해 열혈 18세.
왕립기사단을 꿈꾸는 전사 '롤'.

그가 모든 사람이 소중하다는 것에 부정적 생각을 갖게 된 원인은-

올해 역시 18세
궁수에서 요리사로 전업한 그녀, 그의 친구 '레베카' 때문이다.

마족이 빈번하게 마을을 습격해 마을을 지킬 전사가 줄어들 때였는데, 때마침 레베카가 요리사로 전업해버리자 롤은 뜻 모를 배신감과 요리사라는 직업에 부정적 사고를 가지게 되어버렸다.

레베카는 그저 [요리는 할 줄 알아야, 이담에 '남편'에게 아침을 대접할 거 아냐] 라고 변명할 따름이다.

그녀가 요리 삼매경에 빠질수록 롤은 그녀에게 멀어져만 갔다.


화창한 토요일.
아니, 너무 화창해서 더운 토요일.

사람들은 근처 강가나 저수지, 혹은 몸집이 큰 나무 아래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긴 롤도 마찬가지.

롤은 자주 알고 지내던 사람과 자신의 장비나 자신이 잡은 마족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었다.
이야기는 커지고 커져 주위에 있는 여러 전사와 사냥꾼과도 말이 통해 즐거운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렇게 롤과 사람들이 더위를 이기고 있을 때,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광장 중앙에서 뜨거운 요리기구 앞에 음식을 만들고 있던 이가 있었으니, 척하니 레베카다.

그녀의 그런 행동은 며칠을 반복했고 그녀 주위엔 음식물 쓰레기가 허다했다.
마을 주민들은 레베카가 버린 쓰레기에 많은 불만을 품고 있었던지라 레베카에게 냉담한 눈길만 보내고 있었다.

그녀에 얼굴엔 닦아주고 싶을 만큼의 땀이 송글 송글 맺혀 있었고 롤은 그저 안쓰럽기만 했다.
선뜻 다가서서 도와주고 싶지만 마을 사람들의 눈치와 요즘 들어 사이가 멀어진 관계가 맘에 걸려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그녀를 도와 준 건 밤 몰래 그녀가 쓰던 요리 기구를 정리하고 이리저리 떨어진 쓰레기를 주워담는 것뿐이었다.


여느 날처럼 화창한 날. 그리도 많이 드나들던 마족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사람들은 나태해지기 마련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사와 기사단의 단단한 수비진이 떡하니 마을 앞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레베카, 그녀는 요리를 하고 있다.
사람들의 눈치는 여전하지만 그녀의 솜씨가 약간이나마 늘어가는 건 그녀 자신과 롤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 봤자 맛이 없긴 여전하다.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성벽을 기대며 오는 한 기사가 있었다. 힐러들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상처를 입고서...

[도망 쳐요. 도망쳐요... 도망쳐요....]

기사는 '도망쳐요' 라는 말을 되풀이 한 채 그 자리에서 여신의 곁으로 갔다.

기사의 말이 끊기기 무섭게 성 가까이에 이전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의 진을 치고 있는 마족이 나타났다.
롤을 포함한 전사와 마법사 궁수- 딱히 말하자면 전투에 도움이 될만한 사람들-들은 일제히 장비를 갖추고 마족과 맞설 준비를 하였다.

전투가 일어나기 전 롤은 레베카를 급히 성당 안에 있게 하고는 작별인사를 한 채 광장으로 가버렸다.

그녀 혼자 남았다.


얼마쯤 지났을까.

그렇게 많은 마족이 쳐들어왔음에도 인간은 꿋꿋이 버티었다.
여신이 은총을 베풀어서인지, 그들의 전투경험 덕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서서히 인간의 승리로 굳어지고 있었다.

그 때. 롤에겐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 벌어졌다.
레베카가 있는 성당으로 3~4마리 정도의 가고일들이 다가가고 있던 것.
엎친 데 덮친 격. 성당 주위로 불이 번지고 있었다.
롤은 황급히 동료들과 성당으로 향했다.
성당으로 가는 계단이 몇몇 부서지고 강한 마족이 막아섰지만 정말로 그를 막고 있는 건 부서진 길도, 마족도 아닌 조금 있으면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었다.
롤의 동료들이 가고일을 쫓아낼 쯤. 롤은 가지고 있던 철괴로 잠긴 문을 부수기 시작했다.

-철커덩.. 철커덩...

성당 문에서 듣기 싫은 둔탁한 소리가 나고 있었다.
그 소리가 쾡-하고 울리는 소리와 함께 그쳤다.

불은 삽시간에 번져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롤은 불타는 커튼 옆에 배치된 피아노 의자에서 그녀, 레베카를 찾을 수 있었다.

롤은 불을 해치고 나아가 레베카를 끌어 안았다.
롤은 자신의 손바닥으로 그녀의 볼을 살짝, 여러 번 두드렸다.
그렇게 그녀를 깨우자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눈을 떴다.
의식이 혼미해서인지 눈에 초점은 없었다.

레베카가 깨어나자 롤은 그제서야 안심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안고 나가려던 참에 그녀는 가느다란 손으로 잡고 있던 작은 가방에서 선물하기 위해서 만든 듯한, 곱게 리본이 매듭지어진 치즈빵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 빵을 작게 뜯어낸 다음 그녀는 빵을 롤에게 건넸다.

롤은 아무런 말없이 침묵 속에서 쾌쾌히 재가 앉은 빵을 먹기 시작했다.
분명 빵은 재가 앉아 먹기도 껄끄럽고 맛도 없어 보였다.
이쯤에 롤은 그녀가 살 수 없단 걸 알았으리라.

먹은 사람은 오직 롤뿐이지만, 그가 그 맛을 느낄 수 있었을까.

치즈빵이 점점 그의 눈물로 씻겨질 때 롤은 간신히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걸 들을 수 있었다.

[이런 음식... 아침마다 네게 주고 싶었는데...]

롤은 그제서야 그녀가 궁수로서의 재능을 타고났음에도 불구하고 요리사가 된 걸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또한 롤은 우정이 아닌, 여느 음유시인이 노래하던 ' 사랑 ' 이란 감정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다시 한번 말했다.

[다음엔... 좀더 평화로운 세상에서 태어나자..... 그 때 만큼은... 너에게 아침식사를 대접할 수 있겠지?....]

밀려오는 슬픔에 롤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당연하지!] 라는. 롤다운 대답을 그녀는 듣지 못하고 그렇게 기억 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에게 남겨진 건. 언제나 그녀가 열심히 만들던. 먹다 만 치즈빵 한 조각이었다.


얼마나 세월이 흘렀을까.
롤은 어느새 한 여자와 혼인을 맺고 자식을 낳아 잘 살고 있었다.
요리사라는 직업을 가진 채로.
그가 요리사로 전업하려고 했을 때 동료들은 말리려고 했지만, 몇 년 전 그녀의 죽음으로 인해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지금 에린 최고의 요리사이다.
그리고 지금, 수많은 사람이 모인 앞에서 요리 시범을 보이고 있다.
사람들은 최고의 요리사라는 말에 무슨 대단한 요리를 만들까, 하고 생각했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그는 초라한 치즈빵을 만들었다.
그것을 시식대에 놓자 사람 한두 명씩. 그리고 전부가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쪽에 숨겨둔 치즈빵 하나를, 이제 10살이 된 그의 딸 '레베카'에게 건네주었다.

건네줌과 동시에 사람들은 너도나도 칭찬의 말을 하나씩 했다.
정말 맛있다고. 이런 음식은 내 생에 처음이라고.
칭찬의 목소리가 많아질 때.
그는 새삼스레 호주머니 밖으로 삐져나온, 작은 병 하나를 바라보았다.

잘 봉합된 병 안엔 이제는 썩어 모습도 알아볼 수 없게 된 치즈빵 한 조각이 고이 놓여져 있었다.

그렇게 그가 병을 바라볼 때에도 사람들은 이보다 맛있는 치즈빵은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에린 최고의 요리사 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말한다.
분명 이젠 존재하지 않지만 에린에서 가장 맛있는 치즈빵은 젊었을 때, 어느 형편없는 요리사가 나를 위해 만든 눈물 젖은 치즈빵 한 조각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