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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이 비행기'입니다
I am a paper plane


나는 '종이 비행기' 입니다.

나의 몸은 잡화점에서 푼돈으로 쉽게 구입 할 수 있는 흔하디 흔한 종이로 접어져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이 종이는 싸구려라 그런지 거센 바람에 쉽게 구겨지고, 또 가끔 습기 찬 날이면 두 날개에 물기가 잔뜩 묻어 온 몸이 무거워집니다. 고운 빛깔도 아니며, 어린아이의 피부처럼 부드럽지도 못 합니다. 시간을 떼우기 위해 낙서하다가 그림이 마음에 안들면 금방이라도 구겨서 던져버리기 쉬운, 그런 흔하디 흔한 종이이죠.

하지만 내 친구들 중엔 가끔 오색으로 빛나는 멋진 종이로 만들어진 녀석들도 있습니다. 그런 친구들을 보면, '저 주인은 대체 얼마나 돈이 많길래 한낱 종이 비행기에 저런 고급 종이를 사용하는거야?'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만, 그리 부럽지는 않습니다. 내 주인님은 아직 어린 나이이고 또 부유한 집안의 아이도 아닌지라 고급 종이로 저를 만들지는 못하셨지만 그런것 보다 훨씬 더 멋진, 정성이라는 포장지로 나를 덧입혀줬으니 부러울게 전혀 없는 것 입니다. 그래서 나는, 감히 '나는 이 세상 어느 종이 비행기 보다 행복한 비행기다!' 라고 소리 칠 수 있습니다.

주인님은 절대 나를 버리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참 많은 버림 받은 종이 비행기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너무 멀리 날아가 버려서 버림 받기도 하고, 강가나 깊은 숲 속 같은 곳으로 들어가버려서 버림 받기도 합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한 번 날려버리고 버릴 작정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주인님은 그런 매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몸이 많이 약하신 주인님은 다른 사람들처럼 힘껏 뛰어놀지 못합니다. 그래서인지 늘 공터 근처에 앉아서 나를 바람에 날리고, 자유롭게 나는 나를 바라보며 웃으십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바람에 떠밀려 가끔 늑대들이 나온다는 들판까지 날아가 버렸습니다. 마을과 들판 사이의 울타리를 넘어버렸죠. 그때, '아, 이대로 버림 받는구나.' 라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들판의 이름모를 풀 위에 누워 내가 사라지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비가 떨어져 조금씩, 조금씩 몸을 찢어가기를, 호기심 많은 어느 날짐승이 다가와 그 날카로운 이빨로 나를 물어 발기발기 찢어놓기를, 강한 바람이 불어 어디론가 다시 휩쓸려가서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축 늘어져버리기를. 나는 그렇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자유로운 새처럼 활공하며 날던 하늘을 바라보며, 그렇게 조용히 말입니다. 그리고 내 몸에 무언가 그림자가 드리웠을 때, 나는 드디어 날짐승에게 짓밟히게 되는 줄 알았습니다. 주인님의 웃음 소리가 그리웠고, 주인님을 아쉽게 해서 너무나도 슬펐습니다. 어쩌면 나는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그림자는 내 몸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너무나도 익숙하고 그리웠던 목소리가 들렸죠.

"찾았다!"

주인님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나를 들고 있었습니다. 동네의 개구쟁이들도 무섭다고 피하는 이 들판. 제대로 된 길조차 없는 이 들판에 주인님은 나를 찾으러 오신겁니다. 몸이 약해서 친구들과 공놀이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그런 주인님이, 고작 싸구려 종이로 만들어진 나를 찾기 위해 온 들판을 뒤지신겁니다.
그 날 이후 난 확신 할 수 있었습니다. 주인님의 두 눈은 언제나 나를 향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선이 나와 함께 하는 한,
나는 절대 버림 받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은 나를 만들었고,
나는 인간을 꿈꾸게 합니다.

나는 그들이 아니어서 그들의 심리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주인님의 눈길을 느낄 때면 늘 같은 생각이 들곤 합니다. '인간들은 한낱 종이로 이루어진 우리에게 꿈을 걸었다.' 인간들은 이따금씩 푸르른 창공을 바라보며 그것을 동경 합니다. 새하얀 구름 한 조각도, 푸르른 하늘 한 가운데 떠 있는 팔라라의 햇살도, 그리고 그 사이를 활공하는 새의 날개짓도. 지상의 삶이 너무나도 번잡하고 힘겨워서 일지도 모릅니다. 지상의 인간들은 늘 경쟁하고, 앞을 향해 달리기만 하니까요. 좁은 땅 위에 여럿이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그들은 한 없이 드넓고 푸르른 하늘을 그립니다. 날개 대신 두 팔이 달린 것을 원망하며, 닿을 수 없는 그곳을 향해 손을 뻗죠. 그래서 우리들이 만들어진게 아닌가 합니다.

그들은 한장의 종이 위에 하늘을 향한 동경과 이상을 담아 접습니다. 그렇게 몸체가 접어지고, 두 날개가 접어지는 겁니다. 그렇게 완성된 비행기는 인간의 바램을 가득 실은 채 하늘로 날아갑니다. 비록 두 날개를 파닥거려 자신의 의지대로 날 수는 없지만, 세상의 숨결 속에 몸을 실어 바람가는대로 날 수 있습니다. 인간보다는 더 높게, 인간보다는 더 멀리.

하지만 종이 비행기인 나는 잘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이 꿈꾸는 하늘을 향한 자유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걸. 인간의 두 다리를 지상 위에 묶어두는 중력이라는 것이 사라진다면, 분명 인간은 저 드넓은 창공을 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허공에 갇혀 자의대로 움직일 수 없는 궁극의 부자유에 다시 한 번 발을 묶이게 될테지요. 어쩌면 인간들은 원하는 길을 걸을 수 있기에 그 어떤 존재보다도 자유로운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주인님은 빼구요. 우리 주인님은 이 좁은 지상 위를 원없이 달릴 수 있는 자유마저도 빼앗겼습니다. 그것은 하늘에서 우리를 내려다 보는 신에게 빼앗긴 걸지도 모르고, 늘 우리 곁을 맴도는 악마에게 빼앗긴 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 주인님은 그 자유를 나에게끔 대신 누리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나는, 어떤 종이 비행기보다도 더 멀리, 더 높게 날아야만 합니다. 제 두 날개엔 주인님의 소망이 가득 담겨 있으니까요. 누구보다도 더 멀리, 그리고 더 높게 날아서 주인님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도록 하고 싶습니다.

나는 '종이 비행기' 입니다.

그 어떤 종이 비행기보다도 아름답고, 그 어떤 종이 비행기보다도 튼튼하며 그 어떤 종이 비행기보다도 멀리, 그리고 높게 날아야만 하는..

행복한 '종이 비행기' 입니다.